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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안데르탈인은 왜 사라졌나?

네안데르탈인의 뇌는 현 인류와 비슷하거나 더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기를 만들고 불도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도 네안데르탈인은 사라졌다. 왜일까? 단순히 호모 사피엔스가 더 영리했기 때문일까? 여기서는 과학적 설명을 제외하고 PonderEd Education이 탐구하고 정리한 두뇌의 정보처리 방법이라는 관점에서 하나의 가설을 세워 이 질문을 살펴본다.

도구의 사용은 흔히 두뇌 기능의 척도로 여겨진다. 생존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도구의 발달은 분명 두뇌 발달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구분해야 할 두 가지 두뇌 기능이 있다. 하나는 이미 존재하는 도구를 이용하거나 약간의 개선을 통해 목적을 이루는 두뇌이고, 다른 하나는 창의·창조적 사고를 통해 이전에 없던 도구를 만들어내는 두뇌다.

도구를 이용해 목적을 이루는 기능은 인간만의 능력이 아니다. 동물도 도구를 사용한다. 물론 이것이 동물과 인간의 두뇌가 같은 수준이라는 뜻은 아니다. 인간의 두뇌 용량은 다른 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다. 그래서 기억할 수 있는 정보도 월등히 많다. 저장할 수 있는 정보가 많으면 그만큼 목적을 이룰 확률이 높다. 사냥을 위한 정보가 많으면 성공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뇌가 크다는 사실만으로 사고력이 뛰어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두뇌의 많은 영역이 정보를 저장하는 기억에 사용된다면, 사고력을 발휘하는 영역은 상대적으로 작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기억력과 사고력의 차이가 중요해진다.

기억력은 도구를 사용하는 데 매우 적합한 두뇌 기능이다. AI가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목적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이룰 방법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 낚시를 생각해 보자. 낚시에 관한 지식과 기술이 충분히 저장되어 있다면 때와 장소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 선택해 고기를 잡을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즉, 기억력은 이미 알고 있는 정보에서 목적을 이루는 방법을 찾는 ‘목적 지향적 두뇌 기능’과 직결된다.

문제는 목적 지향적 두뇌 기능만으로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에서 생존 가능성을 계속 높이기 어렵다는 데 있다.

자연은 멈추지 않는다. 날씨가 변하고, 환경이 변하고, 기후가 변한다. 기억은 이미 알고 있는 정보지만 변화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미래다. 변화의 폭이 작다면 기억 속의 지식과 기술로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변화가 저장된 지식의 범위를 벗어나는 순간, 과거의 정답은 더 이상 정답이 아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어도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는 변화에는 쉽게 대응할 수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이 PonderEd Education에서 말하는 ‘목표 지향적 두뇌 기능’이다. 목표 지향적 두뇌 기능은 이미 존재하는 답을 찾아가는 기능이 아니라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는 사고력이다. 처음 접하는 현상을 탐구하고, 그 상황에 적응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가는 두뇌다.

정리하면, 차이는 분명하다. 목적 지향적 두뇌 기능은 이미 알고 있는 정보로 목적에 도달한다. 목표 지향적 두뇌 기능은 답이 없는 상황에서 탐구를 통해 새로운 길을 만든다.

이제 이 두 가지 두뇌 기능을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에 적용해 하나의 가설을 세워보자.

만일 네안데르탈인의 두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의 비중이 호모 사피엔스보다 컸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기억력은 목적을 이루는 방법을 찾는 데 적합하다. 그렇다면 네안데르탈인은 축적된 지식과 경험에 의존해 도구를 사용하며 생존을 이어가는 능력이 뛰어났을 수 있다. 특정한 상황에서는 호모 사피엔스보다 더 효율적으로 목적을 달성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이 네안데르탈인에게 목표 지향적 두뇌 기능이 전혀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두 기능의 비율이 달랐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 가정은 네안데르탈인은 원시적 형태의 도구를 만들 수는 있었지만, 환경이 크게 바뀌었을 때 기존의 지식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형태의 복잡한 도구를 생각해내는 능력에서는 차이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호모 사피엔스는 어땠을까?

현재 인류가 호모 사피엔스이고, 인류의 역사에서 천재적 사고력을 발휘한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호모 사피엔스는 목적 지향적 두뇌 기능을 넘어 목표 지향적 두뇌 기능을 발휘할 가능성을 가지고 세상에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천재적 사고는 목표 지향적 두뇌 기능도 넘어선 창의/창조적 사고의 영역이다. 다만 천재적 사고인 창의/창조적 사고는 현 인류의 역사에서 조차 찾기 어렵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쉬운 목표 지향적 두뇌 능력 조차 충분히 발휘하는 사람의 수가 많지 않다.

그 이유도 두 기능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목적 지향적 두뇌 기능은 동물의 본능에서 확장된 형태이므로 상대적으로 쉽게 사용할 수 있다. 반면 목표 지향적 두뇌 기능은 진화 과정에서 활발하게 사용된 기능이 아니었기 때문에 쉽게 활성화되지 않는다. 더구나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은 가르칠 수 있었지만,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하며 새로운 길을 만드는 ‘생각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가르칠 방법은 없었다는 점이 목표 지향적 두뇌 능력의 활성화를 막아왔다.

이 관점에서 보면 네안데르탈인의 소멸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네안데르탈인은 어쩌면 호모 사피엔스에게 AI와 같은 존재였을 수 있다. 기억력이 뛰어나고 도구 사용 능력이 발달해 원하는 목적을 효율적으로 이루는 데 강점을 보였을 수 있다. 그러나 자연환경이 계속 변하고 호모 사피엔스와의 경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과거의 지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 새로운 도구와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내는 능력에서 차이가 벌어졌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차이가 생존의 차이로 이어졌다면, 네안데르탈인을 사라지게 한 것은 단순한 두뇌의 크기나 기억력의 차이가 아니었을 것이다. 변화 앞에서 과거의 지식을 사용하는 두뇌와, 경험과 지식 밖의 현상을 탐구하며 그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내는 두뇌의 차이였을 수 있다.

인류는 질문을 통해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고 새로운 길을 만드는 두뇌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능력은 저절로 충분히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며, 지금까지는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었던 능력으로 남아 개인의 역량에 맡겨져 왔다.

하지만 이제 PonderEd Education에서 탐구하고 정리한 체계적인 두뇌 발달 방법이 있다. 호모 사피엔스가 가지고 태어났지만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던 목표 지향적 두뇌 기능을 깨우고 발달시키는 방법이다.

변화가 크지 않은 시대에는 기억한 지식이 생존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정답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에는 기억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결국 살아남는 두뇌는 정답을 많이 기억하는 두뇌가 아니라, 정답이 없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두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