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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인해 무너질 교육

AI의 발전이 빠르다. 빠르다는 단어는 계획한 목표의 성취가 빠르게 다가온다는 의미도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생각하지 못한 부작용도 많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목표 달성은 방법과 과정이라 결과를 예측은 할 있겠지만 부작용은 결과이기 때문에 발생하면 사회는 이미 그 충격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상태가 된다. AI의 부작용 중 직업이 사라지는 경우는 오래전부터 거론된 내용이다. 특히 중간 관리자 직업군이 대상이다. AI가 만들어진 배경을 보면 왜 중간 관리자 직업군이 경쟁의 대상이 되는지 알 수 있다. AI는 인간의 두뇌를 흉내 낸 기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두뇌는 신경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신경세포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근육처럼 연결이 되어 있으면 한쪽의 움직임이 다른 쪽에 영향을 주어 동시에 하나의 방향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연결되어 있지 않은 신경세포는 서로 신호를 주고받기 위해 신경 전달물질을 사용해야만 가능하다. 신경전달 물질은 능동적으로 두뇌를 사용할 때 나온다. 공부가 어려운 이유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신경세포를 서로 연결할 수 있어야 정보를 논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데, 능동적으로 신경세포를 연결할 공부 방법이나 가르치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두뇌의 작용 방법을 흉내 낸 기계가 AI다. 비유해서 설명하자면, 개인이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고, 그 컴퓨터에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정보와 앱이 설치되어 있는데, 필요에 따라 각각 다른 지식과 앱을 공유하며 서로 연결해 결과를 도출하는 형태다. 효과는 크다. 지식의 양이 많아 비교가 가능하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를 추려내 정리할 수 있다. 빠르고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편리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연결이 어긋나 가짜 정보가 진짜처럼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훈련이 되어가면서 조금씩 해결될 문제다. 인간의 두뇌도 기억의 왜곡 등과 같이 가짜 정보를 생성하기 때문이다.

쉽고 빠르게 정보를 정리해 제공하는 AI는 또 한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AI가 접근할 수 있는 지식에는 ‘방법’이 포함되어 있다. ‘물고기를 잡아주기 보다는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라’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가르친다는 말은 곧 지식으로 전달한다는 뜻이다. 즉, 방법도 지식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AI와 공존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문제는 이런 지식을 이용해 상황에 적합한 방법을 찾아내는 기능은 AI가 인간의 두뇌 능력을 이미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바둑의 세계는 이미 AI가 인간의 수를 넘어섰고, 다른 많은 분야에서도 이미 AI의 능력은 인간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사회는 이제 AI로 인해 재편성 되어갈 걸로 보인다. 과거 피라미드형 사회구조의 위와 아래 사이 중간 관리자층이 곧 AI로 대체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인간의 삶은 크게 둘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AI를 이용하고 부리며 살아가는 삶이고, 다른 한 계층은 AI의 통제에 따라 노동력을 제공하는 부류다. 피라미드식 사회 구조를 고려해볼 때 AI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의 수가 더 많을 걸로 예상된다.

어떤 사람들은 AI로 인해 인간의 삶이 편안하고 행복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힘든 노동을 AI가 탑재된 로봇이 하고, 많은 위험한 일도 AI 로봇이 할 수 있기 때문에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천진난만한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는 완전한 착각이다. 인간 사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소비가 있기 때문이다. 소비하는 사람이 있어야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리고 소비와 생산에는 경쟁도 존재한다. 회사는 생산한 제품이 더 많은 선택을 받아야 존재할 수 있다. 나아가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하는 이유는 필요에 의해서다. 만일 생존만이 인간이 존재하는 의미라고 한다면, 굳이 아름다운 옷, 기능이 복잡한 컴퓨터가 필요 없다. 인간에게는 생존을 넘어선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존재의 의미가 있다. 그중 하나가 도전을 통한 성취이고, 이 과정에는 노력과 고난의 시기도 함께 따른다. 이런 도전과 성취를 뒤로하고 AI가 제공하는 편안함과 행복함에 취해 살아갈 수 있을까? 편안하고 행복한 삶에 빠져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을 의미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영화 메이트릭스에서 처럼 인간은 그저 소비를 통해 거대한 사회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일개 건전지일 뿐인 삶을 살게 되지는 않을까? 하지만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도전과 성취를 갈망하는 본능은 뿌리가 너무도 깊어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도전과 성취를 갈망하는 욕구를 충족하려면 경쟁이 필수인데, 이 경쟁에 AI가 뛰어들었다. 지식, 기술, 그리고 방법을 찾는 속도와 정확도에서 인간을 앞서가기 시작했다. 인간의 두뇌는 아날로그 방식인데, AI는 디지털이라 속도도 빠르고 정확하다. 또한 AI의 데이터는 한계가 없다. 어제 외운 영어 단어도 기억이 나지 않는 인간의 두뇌와 비교하면 게임이 되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보다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지에 대한 질문일 수 있다.

인간이 AI의 경쟁 대상이 된 이유는 교육에 있다. 지식과 기술 그리고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이 문제의 근원이다. 지식과 기술 그리고 방법을 더 쉽고 빠르게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AI는 곧 교육자를 시험에 들게 할 걸로 보인다. 교사가 가르치는 내용을 학생이 AI에게 물어 확인하고 AI가 제공하는 정보를 가지고 교사에게 되묻는 현상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이 오면 결국 교사는 AI의 검증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자질도 의심받게 된다. AI보다 못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학생을 가르치냐는 비아냥도 받게 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AI로 인해 교육이 무너지는 신호탄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교육을 바꿔야 한다. 지식과 기술 그리고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에서 지식을 발견하고 생각하는 두뇌, 기술을 습득하는 교육에서 기술을 창조하는 두뇌, 그리고 방법을 배우고 익히는 두뇌에서 방법을 생각하는 두뇌를 발달시키는 교육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인간이 AI의 노예로 전락하지 않는다. 

PonderEd Education(http://kr.PonderEd.ca), 두뇌 발달 교육을 제공하는 유일한 교육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