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교육에서 칭찬은 많이 이용되는 도구다. 칭찬을 통해 아이의 용기를 북돋울 수 있고, 아이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칭찬이 긍정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부모가 모르는 칭찬의 숨겨진 부정적 기능이 또 하나 있다. 칭찬의 방법에 따라 아이의 무의식 세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칭찬이 아이의 무의식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칭찬이 일상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우선 칭찬의 주체를 예와 함께 생각해 보자. 한 회사의 직원이 있다. 이 직원의 상사가 회사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상을 받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팀장님, 참, 잘했어요!’라는 축하의 의도에서 칭찬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 말을 들은 팀장의 반응은 어떨까? 부하 직원의 칭찬을 환영할까? 이번에는 상황을 조금 바꿔 법정에서 판사가 판결을 내린 상황을 생각해 보자. 판사가 내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고, 이 상황에서 내가 판사를 향해 ‘판사님, 참 잘했어요!’라고 칭찬을 했다면 판사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칭찬은 피라미드식 사회 구조에서 위에 있는 사람이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사용하는 도구다. 의도는 분명하다. 지금처럼 윗사람으로부터 칭찬받는 말과 행동을 계속 이어가고, 나아가 다른 사람도 이를 본보기로 삼아 따라 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자녀 교육의 관점에서 해석하자면, 아이가 부모의 뜻에 부합해 말하고 행동하도록 만들기 위한 도구가 칭찬이라는 의미다. 칭찬에 훈육이 합쳐지면 자녀 교육의 기본 접근법이 완성된다. 잘했으면 칭찬과 훈육의 방법을 사용하면 아이로 하여금 부모의 뜻에 맞춰 말하고 행동하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칭찬과 훈육은 가장 보편적인 교육 도구로 사용된다. 이는 가정뿐 아니라 학교, 사회 등 모든 영역에 퍼져있다. 상과 훈장 등 방법도 다양하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칭찬을 통해 가장 많은 이득을 얻는 사람은 누구일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을 가지고 생각해 보자.
고래가 주인의 명령에 따르도록 훈련을 시키는 과정에서 주인은 고래를 칭찬한다. 물론 포상도 포함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고래는 주인의 명령과 의도에 부합해 행동한다. 고래가 준비되면 이제 관객들 앞에서 춤을 추도록 만든다. 이 상황에서 누가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걸까? 춤추는 고개를 통해 돈을 버는 주인이 아닐까? 물론 고래도 얻는 게 있다. 춤을 잘 출수록 더 인정받고 포상도 따른다. 다른 고래보다 더 맛있는 물고기를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주인의 뜻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춤을 더 잘 추는 고래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밀려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쓰이고 난 고래의 삶은 그 순간부터 끝을 향해 달려간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잘 쓰이는 삶’이라는 표현으로 애써 포장하기도 한다. 물론 도구의 관점에서는 잘 쓰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자녀를 키우는 부모 중 아이가 도구로 잘 쓰이기를 바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도구는 사용하는 주체에 따라 잘 사용될 수도 또 버려질 수도 있다. 도구의 주인이 필요를 찾으면 곁에 둘 것이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면 팔리거나 버려질 소모품에 불과하다. 도구에는 생각과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수족관에 갇혀 살아가는 고래에게는 갈 곳을 선택할 수도 또 음식의 종류를 바꿀 수 있는 결정권도 없다. 그저 주인의 결정에 모든 것이 맡겨져 있다. 그리고 주인의 결정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 생각과 주체 의식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 이와 비슷하게 칭찬은 아이를 고래와 같은 도구로 만드는 과정에 사용되는 도구다. 부모와 사회의 뜻에 아이가 스스로 따르도록 생각을 지우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잘 길들여진 아이의 앞날은 불 보듯 뻔하다.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부족해 누군가에게 기대야만 하는데, 기대는 대상이 만일 사이비 종교 단체, 다단계 또는 사기꾼과 같은 사람이면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고통의 시간은 당사자가 아니라 부모나 가족의 몫이라는 점이다. 갇혀서 훈련받은 대로 살아가는 고래가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을 잃듯, 이미 정체성을 잃었기에 사이비 종교에 기대어 살아가는 과정에서 당사자는 이런 삶이 진정한 행복이며 의미 있는 삶이라고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이들은 고래처럼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다.
두뇌에는 무의식 세계가 있다. 무의식은 두뇌가 진화하면서 쌓아온 지혜를 담고 있다. 이 무의식에는 칭찬을 선별하는 기능이 있다. 원하는 걸 스스로 얻을 능력이 없으면 칭찬에 의존해 욕구를 충족한다. 하지만 능력이 있어 스스로 욕구를 충족할 수 있으면 칭찬에 거부감을 느낀다. ‘참 잘했어요!’라는 칭찬의 문구를 권력자가 아랫사람에게 사용할 수는 있어도 아랫사람이 권력자에게 사용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권력자에게는, 스스로 쟁취했든 아니면 주어졌든, 능력이 있다. 아랫사람에게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회사의 직원이 사장에게 ‘참 잘했어요!’라고 칭찬한다면 그 직원은 아마도 회사를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많은 부모가 칭찬을 자녀 교육의 도구로 사용한다. 무의식 영역에서 칭찬이라는 도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인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물론 무의식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진 의미에 미지의 영역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으니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 기회를 통해 칭찬의 의미를 다시 새겨봐야 한다.
칭찬은 상황과 방법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 아이가 부모의 뜻에 부합해 행동하면서 칭찬과 포상을 바라고 있는 상황에서의 칭찬은 독이 된다. 이렇게 자라는 아이에게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두뇌 능력을 키울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칭찬을 통해 아이의 정체성과 사고력 발달을 이루고자 한다면 방법을 바꿔야 한다. 고래도 춤추게 하는 겉모습에 대한 칭찬이 아닌 아이의 무의식을 깨울 수 있는 칭찬이라야 한다. 아이의 무의식을 깨어나게 만드는 칭찬은 결과가 아닌 과정과 방법에 대한 질문이다.
이제 칭찬보다는 아이의 의견을 물음으로써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자녀 교육 방법을 바꿔야 할 때이다.
무의식 속의 잠재된 두뇌 능력을 깨워 완성하는 교육 Ponde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