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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덫으로 가득하다. 사기성 다단계, 금전 사기, 보이스 피싱 등 너무도 많다. 사이비 종교도 그 중 하나다. 사이비 종교를 추적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전파 방법과 실체를 찾아 드러냄으로써 사람들에게 경고한다. 그런데도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이런 종교를 확인하고 거르는 방법을 서로에게 전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 사이비 종교도 전파하는 방법을 발달시킨다. 생명체가 환경에 맞춰 진화해 왔듯, 이들도 상황에 맞춰 진화한다. 살겠다고 몸부림친다는 뜻이다. 그런데 하나 이상한 점이 있다. 너무나 비상식적임에도 사람들이 빠진다는 점이다.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이런 단체에 왜 빠지는지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남아 있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사이비 종교에 빠지도록 만들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지식에 초점을 둔 교육이 그 근간에 있기 때문이다.
단언하건대 지금까지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는 걸 인지한 사람은 많지 않을 걸로 생각된다.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사이비 종교에 대한 정보가 많을수록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법은 사이비 종교를 피하는 방법이라 빠지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 처음부터 사이비임을 알고 피하는 것과 사이비임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완전히 다르다.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은 실제로 사람들을 사이비 종교에 빠지도록 만드는 요소가 된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를 비롯한 사회 시스템을 통해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교육 방법은 지식 전달이 주를 이룬다. 물론 가르치는 사람에 따라 지식이 아닌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사람도 있다.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와 같은 사람의 강의가 그렇다. 이런 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식을 전달한다. 그런데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지식은 ‘맞다/틀리다’, ‘좋다/나쁘다’와 같이 판단이 내려진 결과다. 즉, 결론이 내려졌으니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잘 차려진 밥상과 같다. 어려서는 부모가 아이에게 해야 할 것과 하면 안 되는 말과 행동을 가르친다. 부모와 사회의 판단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도록 아이를 길들이는 과정이다. 여기서 ‘그러면 내가 아이를 사이비 종교의 먹잇감으로 키우고 있다는 건가?’라고 생각하는 부모도 있겠다. 그렇다. 이미 많은 부모가 사이비 종교의 먹잇감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자녀를 가르치고 있다. 부모뿐 아니라 학교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는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외치며 판단이 내려진 지식을 배우고 익히라고 강요한다. 물론 지식의 전달이 생존에 있어서는 힘이 된다. 복어의 독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먹고 죽을 수 있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지식을 배우고 익히는 공부 방법에는 판단하는 방법이 빠져있다. 어쩌면 가르치는 사람은 ‘나는 고기를 잡아주지 않고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고기 잡는 방법을 지식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일반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이렇게 판단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하다 보니 아이들이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현상이나 사회를 만났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쉽게 판단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한마디로 부모를 비롯해 교육마저도 아이들을 사이비 종교와 같은 단체의 먹잇감으로 키우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부모도, 교육자도 자기들의 가르치는 방법이 이런 현상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저 잘 자라 독립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로 아이를 가르쳤는데, 결과는 사이비 종교의 먹잇감이 되니 답답해할 뿐이다. 우리 안에 갇혀 얼마 후 튀김옷에 싸여 튀겨질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닭과도 같다.
사이비 종교는 포교 대상에게 생각하고 판단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래야 자기들의 판단을 받아들이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판단하는 방법이 아닌 판단이 내려진 지식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하는 교육을 아주 적절하게 이용하는 모습이다. 물론 그들이 이런 원리를 알아서 이렇게 접근하는 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다 보니 타인의 판단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한 아이들에게 이런 방법이 효과적이라는 걸 경험을 통해 터득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방법이 아닌 부모의 판단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교육은 아이가 어릴 때 부모에게 편안함을 안겨준다. 시키는 대로 잘 따르고 반항하지 않으니, 삶이 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모의 편안한 삶은 후에 독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부모의 가르침을 잘 따르듯 타인의 판단을 쉽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타인이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는 사회 지도자라면 나름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길로 가겠지만, 그 ‘타인’이 사이비 종교의 지도자라면 완전히 정반대의 길로 가게 된다.
이 세상에는 아이를 키워 사이비 종교의 먹잇감으로 던져주고자 의도한 부모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 방법이 그런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 본 부모도 거의 없다고 본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가르치는 체계적인 교육이 존재한 적 없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은 부모가 능동적으로 관여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니 집에서라도 아이의 판단력을 길러줄 수 있는 방법으로 교육해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아이가 내린 결정을 존중하되 그 결정이 초래한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과의 과정을 따져 설명하면 된다. 즉, 처음에는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속담처럼 직간접 경험을 통해 결과를 인지함으로써 판단력을 키워가도록 이끌면 된다. 그러면서 점차 경험이 아닌 논리적 사고력을 바탕으로 결과를 예측함과 동시에 다른 결과가 얻어질 가능성에 대한 요소를 찾아 비교하고 분석하는 방향으로 아이를 가르치면 된다. 물론 쉽지 않다. 지금까지 이런 교육이 존재하지 않았었기에, 이 글의 내용을 이해해도 방법을 생각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어렵다고 바꾸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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