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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을 통한 화/짜증 등 부정적 감정을 다스리고 승화시키는 방법

화나 짜증은 힘든 삶의 지표와 같다. 세상의 그 누구도 화나 짜증으로 일상을 채우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화나 짜증의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화가 남을 알아차리면 화가 사그라들고, 삶은 행복해질 수 있다!’라는 주장이다. 정말 그럴까? 자녀의 말과 행동을 보며 화를 내는 부모의 경우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

학교에서 돌아와 숙제는 접어두고 게임에 몰두하는 아이, 방을 정리하지 않는 아이 등의 경우 부모는 화가 날 수 있다. 그런데 이 순간 ‘아, 내가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구나! 이러면 아이도 짜증을 내고 서로 감정이 상해 관계가 나빠질 텐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까? 화를 내던 자신의 모습이 객관화되면서 스스로 화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다. 즉, 나 스스로 화가 남을 깨달음으로써 아이의 일에 간섭하지 않게 되고, 아이의 일에 간섭하지 않아 아이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이어 갈 수 있다. 이런 깨달음은 신라의 승려 원효의 ‘해골바가지 물’을 통한 깨달음과 같다. 그래서 원효의 깨달음으로 이름 짓겠다. 

스스로 알아차림으로써 깨닫는 과정은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 책도 필요 없다. 나 자신이 스스로 깨달으면 된다. 이렇게 스스로 깨닫고 나면, 그동안 자신이 공부했던 내용과 경험 등을 다시 해석해 새로운 지식의 형태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책이나 강연의 형태로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나아가 스스로 깨달음을 얻기 어려운 대중은 먼저 깨달은 사람을 통해 배워서라도 화와 짜증을 줄이고 행복하게 살 길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배워서라도 깨달아 행복하면 삶의 모든 게 해결되는 걸까?

스스로 알아차려 원인을 깨닫는 ‘원효의 깨달음’은 자기만의 깨달음이다. 부모가 깨달았다고 자식이 깨달을 수 있도록 가르치지 못한다. 깨달음을 지식의 형태로 가르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게임으로 밤을 새워도 내 화만 다스리면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깨달았다는 사람 중에는 대중에게 ‘아이 인생에는 관여하지 말고, 당신의 화를 다스리면 행복할 수 있다!’라고 가르치는 이도 있다. 내 자식도 깨달음으로 이끌지 못하는 이런 깨달음을, 대중을 위한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식을 포함해 사랑하는 사람의 일에 간섭하는 건 곧 나 자신의 이득을 위한 행위이지 행복과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 아님을 강조하는 원효의 깨달음, 그래서 모든 삶의 고통은 깨닫지 못한 자기의 문제로 돌리는 자아 비판적 관점의 깨달음은 아주 작은 깨달음에 불과하다. 이런 작은 깨달음을 큰 깨달음으로 착각하고 책과 강연을 통해 대중을 교화하겠다고 다니는 사람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작은 깨달음인 원효의 깨달음은 자식에 대한 사랑, 배우자에 대한 사랑 등을 사랑이 아닌 자기의 이득을 위한 행위라고 해석하며 동시에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탓한다. 책이나 스승의 가르침 없이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과정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면 사랑하는 사람, 특히 내 자녀도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끄는 방법은 없는 걸까?

부모가 자녀에게 화를 낼 때 어떻게 접근하는지 먼저 살펴보자. 아이가 숙제도 팽개치고 게임에 몰두하면 부모는 ‘숙제 안 해!’ 또는 ‘게임 그만하고 공부해야지!’와 같이 명령한다. 부모가 이런 명령 또는 제안을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아이를 위해서다. 그런데 이런 형태의 명령이 아이의 두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명령은 피라미드식 사회 구조의 위에 있는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할 것과 하지 말 것을 구분해 가르치는 의사전달 도구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같은 방법으로 의사를 전달하면 대가를 치르게 된다. 나아가 한 가지 요소가 더 있다. 명령은 받는 사람을 정신적으로 위축시킨다. 직장 상사가 아랫사람에게 명령하면 아랫사람은 고개를 조아리며 명을 받들어야 한다. 이렇게 명령을 받들어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피라미드식 사회 구조의 아래에 있는 사람의 두뇌가 자유롭게 사고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부모가 자식에게 화를 내며 아이를 가르치는 행위는 아이의 두뇌를 밧줄로 꽁꽁 묶어두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런 부정적 감정의 영향을 부모가 깨닫는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아이에게 화를 내려는 순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짜증 또는 화와 같은 감정의 부정적 역할을 깨달은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화를 낼 가능성은 적다. 이렇게 스스로 깨닫고 나면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다. 아이의 두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깨달았으니, 반대로 긍정적 영향을 줄 방법을 찾기 때문이다. 

화나 짜증의 부정적 영향을 스스로 깨닫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처음에는 배워서 깨닫고 이를 바탕으로 긍정적으로 바꿀 방법도 배우고 익혀 적용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이 쌓이면 점차 스스로 깨닫는 힘을 얻을 수 있게 되고, 스스로 깨닫는 힘이 생기면서 능동적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유로운 삶으로 인도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삶의 자유를 찾은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같은 방향으로 인도한다면, 세상은 화나 짜증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채워질 수 있다. 

내게 자녀를 포함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화나 짜증을 낼 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미래를 위해서 부정적 감정의 불을 끄고 자유로운 삶을 향한 긍정적 방향을 비추는 빛을 밝혀볼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