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두뇌 작용에 관한 연구가 아무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도 아직 두뇌의 작용에 관한 내용조차 뚜렷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복잡하다는 뜻이다. 기억은 이런 복잡한 두뇌의 작용 중 하나다. 두뇌가 정보를 저장하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 충분히 밝혀졌다면, 아마도 공부나 치매 걱정은 많이 줄어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유가 뭘까? 기억력에도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기억과 관련된 내용을 진화와 PonderEd에서 정리한 두뇌의 정보처리 과정에 접목해 살펴보겠다.
기억에는 유전자에 저장되는 기억과 두뇌에 새겨지는 기억이 있다. 유전자에 정보가 저장되는 방법은 한 가지이지만 두뇌에 정보가 저장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다른 경로가 있다. 공부뿐 아니라 치매 예방 등 두뇌와 관계된 모든 활동은 어떤 경로로 어떻게 정보를 저장했는지에 따라 기억이 지속되는 시간뿐 아니라 기억을 되살리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기억의 종류까지 합해지면 기억은 복잡해 보일 수밖에 없다. 뇌 과학자도 기억을 뚜렷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글에서는 설명이 쉽도록 두 가지로 나눠서 살펴보자.
첫 번째 기억은 유전자에 기록하는 정보다. 유전자에 기록하는 정보는 두뇌가 관여하지 않는다. 연어의 생을 예로 들어 생각해 보자. 연어는 알에서 부화한 후 바다를 돌고 태어난 강으로 다시 돌아오는 부모의 삶을 그대로 반복한다. 연어의 이런 기억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수정된 알에는 두뇌가 없다. 이 말은 곧 유전자 자체가 연어의 회기에 관한 기억을 저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아가 유전자에 기록되는 정보 또한 환경에 따라 바뀔 수 있다. BC주 칠리왁 강에는 스프링 또는 치눅이라 불리는 연어가 있는데, 이 연어는 다른 강의 연어를 가져다 심어놓은 종으로 소개되어 있다. 연어의 경우 자기가 태어난 강에 대한 위치, 냄새 등의 기억으로 강을 찾아 돌아오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연어를 다른 강에 옮겨 놓았고 또 그 강에서 종이 유지된다는 말은 곧 강에 대한 기억이 태어나서 형성될 수 있고 나아가 그 기억은 유전자에 새겨진다는 걸 의미한다. 유전자가 신체 구조 등 생존에 필요한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있다가 발현한다는 점에서 크게 놀라운 내용이 아니지만, 새로운 강으로 옮겨진 연어 이야기는 각 생명체가 얼마나 빠르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그 정보를 저장해 후대에게 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인간도 이런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부모의 성격, 습관, 신체 구조 등을 비슷하게 이어받는 현상이 그렇다. 또한 인간도 여전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형성되는 기억도 있다. 운동선수의 근육과 움직임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그 정보가 유전자에 기록되어 후대가 태어나면서부터 운동에 적합한 근육을 가지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유전적 기억은 종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두뇌의 발달과는 상관이 없다는데 있다.
유전적 기억을 주관하는 역할은 감정이 담당한다. 감정은 신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한마디로 몸이 기억하는 정보가 유전적 기억이다. 유전자에 정보를 깊이 새기기 위해서는 강한 감정적 자극이 필요하다. 두려움에 떨던 기억,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원하는 걸 얻었을 때의 성취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기억으로 동물들은 생존에 필요한 장소를 찾아 이동할 수 있고 또 그 정보가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다.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유전자에 저장된 정보에 따라 때가 되면 움직인다. 하지만 두뇌에 저장되는 정보는 다르다.
두뇌는 해당 개체가 죽으면 모든 정보가 사라진다. 아무리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해도, 그 사람이 죽으면 정보는 모두 그와 함께 사라진다. 그래서 인간은 기록을 남긴다. 유전자에 새길 수 없으니, 벽에 그림이라도 그려서 남겨야 후대가 그 정보를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두뇌에 정보가 저장되는 과정이 유전자에 정보를 저장하는 과정과 다르다는데 있다. 관찰과 분석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관찰과 분석 등 일련의 정보처리 과정은 두뇌에 정보를 저장하는 핵심이다. 벽에 그려진 그림을 바라보면 ‘와, 예쁘다!’와 같이 감정으로 받아들이면 그림에 대한 정보는 두뇌에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심지어 유전자에 기록되지도 않는다. ‘예쁘다’라고 느끼는 감정은 생존과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림에 대한 정보를 두뇌에 저장하려면 그림이 무엇을 뜻하는지 등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생각이 필요하다. 즉, 인과관계를 찾아갈 수 있는 사고의 과정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런 두뇌 기능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두뇌 또한 신체의 일부이다 보니 감정적 자극에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그런 자극을 통해 정보를 저장한다. 사자 새끼들이 성체의 사냥 과정을 숨죽이고 지켜보는 과정에서 긴장감과 기대감은 사냥 방법을 습득하도록 만든다. 달리 말하자면 두뇌는 두 가지 정보를 저장해야 하는데, 하나는 사냥 방법이고 또 다른 하나는 결과다. 그리고 이때 필요한 요소가 긴장감, 기대, 희망 등의 감정이다. 기대와 긴장감은 상황을 관찰하여 분석하도록 두뇌를 자극한다. 앞서 유전자에 기록되는 정보는 ‘좋다/싫다’와 같이 결론을 바탕으로 한 이분법적 정보라고 한다면, 기대와 긴장의 감정은 성취를 향한 방법을 함께 두뇌에 저장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런 감정은 목적/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물론 인간의 두뇌 기능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호기심을 바탕으로 관찰/분석/실험 등을 통한 정보처리를 시작으로 더 높은 단계의 사고 과정이 있다. 하지만 현재의 교육은 아직 목적/목표를 이루기 위해 방법을 스스로 생각하면서 정보를 저장하는 단계조차 이르지 못한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교육은 유전자에 정보를 저장하는 방법에 머물러있다. 근거는 무엇일까?
목적/목표를 이루려는 방법과 그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를 저장하는 감정은 기대나 희망이다. 하지만 학교나 가정의 교육은 할 것과 하지 말 것을 가르치고 익히도록 혼을 내거나 훈육에 머물러있다. 유전자에 정보를 기록하는 교육 방법으로 아이의 두뇌에 정보가 기록되길 바라는 상황이다. 이는 비유하자면 아이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달리라고 채찍을 휘두르는 것과도 같다. 그런데 교육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달을 보라고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본다.’라며 배우지 못하는 아이를 탓한다. 족쇄를 채우고 채찍질하는 것도 모자라 달리지 못하는 아이를 탓하고 있으니 참혹한 인생이다.
이제는 아이의 발목에서 족쇄를 풀어주자. 그리고 아이를 자유롭게 달릴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 주자. 그래야 아이의 기억력과 두뇌 발달이 함께 이루어 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