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필 박사와의 일문일답] –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행복이 아닌 도전과 고통의 길

◆ 행복한 삶이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목표라고 생각했었는데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가는 삶이라는 과점에서 바라보면 행복한 삶은 존재할 수 없는 것 같아 보여요. 그래도 지금 이대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이런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은 어떤 걸까요? 

– 글쎄요? 그 행복하다는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이 어떤 것인지 개인적인 생각은 알 수 없겠지만 그래도 보편적인 관점에서 해석할 수는 있을 것 같네요. 

◆ 보편적인 관점이라면 어떤 것이죠?

– 현재 행복하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들의 현 삶이 어떤지를 살펴보는 것이죠. 예를 들면 그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이유요. 행복하다는 사람들이 그 이유를 이야기하는 경우를 보신 적 있지 않나요? 

◆ 행복해하는 이유를 일부러 찾아본 적은 없었는데 생각해보니 항상 조건이 있었던 것 같아요. 조건이 이유겠죠? 예를 들면 어떤 종교단체에 속해있어서, 어떤 사회단체에 포함되어있어서 등등이요. 

– 예. 저도 조건 없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보지 못했어요. 항상 ‘내가 속한 사회에서’ 또는 ‘내가 섬기는 스승님으로 인해’와 같이 이유가 붙죠. 

◆ 그래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으니 만족하면 되는 것 아닐까요?

– 그럴까요? 예를 들어 내가 속한 사회의 권력이 바뀐다면 어떨까요? 내가 섬기는 스승이 죽거나 병들면 어떻게 될까요? 

◆ 그런 생각은 해 보지 않았었는데 요즘 군부 쿠데타로 나라가 혼란에 빠진 경우를 보면 사회로 인해 주어진 행복은 사회로 인해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는 해요. 

– 그렇죠. 행복은 내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노력해서 성취했을 때 외에도 나를 보호해주고 내게 살아갈 의미를 부여하는 사회 또는 사람의 테두리 안에 있을 때 느낄 수 있죠. 하지만 행복을 느끼는 감정이라는 결과로 본다면 같지만 이 둘 사이에는 커다란 벽이 있어요. 

◆ 노력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 행복함을 느끼는 것과 내가 속한 사회의 테두리 안에 있기 때문에 느끼는 행복이 다르다는 것인가요? 어떻게 다른가요? 

– 노력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것은 목표를 성취하는 경우죠? 질문자라면 자신의 목표를 성취함으로서 행복을 느낀 사람들의 다음 행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 글쎄요? 또 다른 성취를 위해 나아가는 것 아닐까요? 

– 그러면 자신이 섬기는 스승이나 사회의 테두리 안에 있으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요? 

◆ 그 테두리를 벗어나려 하지 않을 것 같아요.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둘의 차이가 보이네요. 하나는 새로운 성취를 이어가는 진취적인 삶을 살아갈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 자신들이 가진 행복을 잃지 않으려고 자신들이 따르는 스승이나 사회를 떠나지 못하게 될 것 같네요. 

– 예. 바로 보셨어요. 그리고 첫 번째의 경우는 진취적인 만큼 도전도 많고 힘든 시간도 많겠죠. 반면 두 번째의 경우는 도전이나 힘든 시간보다는 말 그대로 행복한 시간이 많겠죠. 다만 두 번째의 경우에는 그 단체 또는 자신이 섬기는 스승을 떠난 삶을 상상하지 못할 만큼 점차적으로 홀로 설 수 있는 힘을 잃게 되겠죠. 

◆ 진취적인 삶도 행복을 원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면 차라리 두 번째가 더 좋지 않을까요? 꾸준히 행복하잖아요. 

– 그건 생각하는 사람마다 다르겠죠. 첫 번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도전과 고통의 시간을 삶의 의미로 볼 것이고 두 번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왜 굳이 힘든 고통의 삶을 살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주어진 상황에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살겠죠. 

◆ 많은 사람들이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데 그렇다면 내가 섬기는 스승이든 사회든 그 테두리 안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낳을 것 같네요.

– 예.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이해해요. 하지만 한 가지 생각은 더 해 봐야겠죠. 주어진 테두리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말 그대로 사육을 당하는 개돼지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을요. 

◆ 사육당하는 가축의 삶과 행복한 삶이 어떻게 비유가 될 수 있죠? 

–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고 주는 대로 먹으면서 울타리 안에 있으면 고민할 거리도 없을 테니까요. 

◆ 하지만 가축들은 주인의 선택에 따라 도축이 될 수도 있고, 혼이 날 때도 또 밭을 가는 힘든 일을 할 수도 있잖아요. 틀 속에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은 적어도 그렇지는 않아 보이는데요? 

– 그럴까요? 사회나 자신이 떠받드는 스승의 테두리에 있으려면 그것이 노동력을 제공하는 행위든 아니면 내 몸을 떼어, 아 동물은 고기를 주지만 인간은 돈으로 대신하죠? 그러니까 내가 가진 돈을 바쳐야 그 사회 속에서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이 세상은 대가없는 행복이란 없나보군요. 주인이나 피라미드식 사회구조의 상위계층이 시키는 대로 따르면서 또 때로는 꾸지람도 들으면서 살아가는 삶이 행복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말도 그저 말 뿐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지는 당사자가 결정하는 것이고 또 그 선택에 대해 누구도 ‘이렇다/저렇다’할 수는 없겠지만 주어진 대로 또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가축의 삶이 아닌 자신이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삶을 살려면 도전하고 그에 따른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면서 성취해 가는 과정이 있어야 가능해요.

◆ 그러니까 결국 사고력을 키우는 이유는 울타리안의 가축과 같은 삶이 아니라 도전과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해 나가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군요. 말씀하신 대로 행복은 잠시 스쳐가는 감정이니 사고력은 행복으로 향하는 길이 될 수 없고요. 

– 예. 

◆ 그런데 예전에 민 박사님께서는 사고력을 길러야 고통의 삶을 끝내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이 말은 자유로운 삶과 행복한 삶이 같지 않다는 뜻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