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필 박사와의 일문일답] – 기쁨과 행복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감정

◆ 납득이 가지 않아요. 피라미드식 사회구조의 꼭대기에 오를 수 있도록 또 타인의 노예가 아닌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으로서 사고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민 박사님 이야기들의 핵심이라고 봤는데 사고력을 키운다는 것이 삶의 기쁨과 행복을 누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요? 많은 사람들이 괴롭고 힘든 삶을 벗어나 편안함, 행복 그리고 기쁨의 삶을 원하잖아요. 그렇다면 사고력을 키워야 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요? 

– 예, 맞아요. 괴롭고 힘든 삶을 털어버리고 행복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사고력을 굳이 키울 이유가 없어요. 

◆ 점점 더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이 되는 것 같은데 좀 더 설명을 해 주시겠어요? 

– 그러면 일단 삶의 현실이 어떤 것인지 예를 들어 설명해 볼게요. 이 이야기는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예요. 마을이 홍수로 인해 농작물의 피해가 커서 농민들이 고민하고 괴로워 할 때 한 거지 아이가 아빠에게 ‘우리는 가진 것이 없으니 홍수가 나도 걱정하며 괴로워 할 일이 없네요!’라고 말했다고 해요. 이 말에 그 아빠는 ‘그래 그게 다 가진 것 없이 동냥하면서 다니는 이 애비 덕이란다.’라고 답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 대화의 주체는 석가모니와 그의 아들이었다고 하더라고요.

◆ 웃긴데 웃음이 나오지 않네요. 석가모니와 아들 이야기라면 충분히 이해가 갈 것 같아요. 

– 아니죠. 석가모니가 이런 말을 했다면 아마 부처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지금까지 그의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오지 않았을 거예요. 

◆ 왜 그렇죠? 

– 생각해보세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으면 세금으로 유지되는 정부도 피해를 입을 것이고, 정부가 피해를 입으면 모든 관리부터 일반 국민들까지 모두 영향을 받지 않겠어요? 사람들의 삶이 힘들고 괴로워지면 동냥을 하는 거지들도 밥을 얻지 못해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 것은 조금만 생각을 해 보면 알 수 있는데, 석가모니가 지금 당장 내가 괴롭지 않다는 것을 농민들의 괴로움에 비유해 이야기 할 만큼 단순한 사람이었을까요? 

◆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보니 어쩌면 이 이야기는 집에서 잘 지내고 있던 아들을 동냥하며 돌아다니도록 만든 자신에 대한 합리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 글쎄요? 석가모니가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이야기를 했다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을걸요. 어쨌든 이야기의 핵심은 그 이야기가 아니니까 주제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이어갈게요. 이 이야기에서 삶의 고통과 행복의 관계를 찾으셨나요? 

◆ 석가모니와 아들 이야기에서요? 괴로워하는 농민들은 있지만 그렇다고 석가모니와 그의 아들이 가진 것이 없어 행복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나아가 후에 농민들의 고통 또한 자신들에게 그대로 전해질 테니 행복보다는 오히려 지금의 괴로운 시간이 지나면 다시 힘든 여정을 시작해야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데요. 

– 바로 보셨네요. 그래서 삶은 그냥 고통과 괴로움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어요. 

◆ 그러면 기쁨과 행복은 무엇인가요?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잖아요. 

– 기쁨과 행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언제 보셨나요? 

◆ 글쎄요? 사람들이 무엇인가 원하는 것을 성취했을 때? 예를 들면 원하는 직장에 취업을 할 수 있었다던가, 진급을 했다던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경우 등이 아닐까요? 

– 그렇죠? 그러면 취업을 했을 때의 기쁨과 행복은 얼마나 갈까요? 

◆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진급에 대한 갈망이 있고 진급을 해도 또 그 위의 자리에 오르려하니 끝이 없어 보이네요. 

– 그 말은 곧 행복은 잠시 느끼는 것이고 또 다시 전쟁터에 몸을 던진다는 이야기죠? 

◆ 그러네요. 하나가 지나가면 또 다른 하나가 기다리고 있으니 끊임없이 거친 앞날을 헤쳐 나가는 것이 삶인 것 같네요. 

– 그리고 하나 더 있죠? 행복과 기쁨을 얻으려면 목표를 세우고 성취를 해야만 가능하다는 점이요. 

◆ 예. 행복과 기쁨을 얻으려면 목표를 이룰 수 있어야 하고 목표를 이룰 수 있으려면 사고력이 있어야 할 것 같네요. 인간사회의 경쟁은 두뇌능력을 바탕으로 한 경쟁이라고 민 박사님도 이야기 하셨죠? 그런데 잠깐만요. 앞서 사고력은 삶의 행복과 기쁨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삶의 행복과 기쁨은 사고력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보이는 데 모순 아닌가요? 

– 아니요. 아직 이야기가 다 끝나지 않아서 그래요. 하나의 목표를 성취하고 나면 그것을 바탕으로 행복과 기쁨을 평생 누릴 수 있나요?

◆ 그건 아니죠. 또 다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이루어 나가야 가능하겠죠. 

-그러면 사고력이 관여하는 부분은 행복과 기쁨의 삶일까요? 아니면 목표를 설정하고 이루어 나가는 과정일까요?

◆ 목표를 세우고 성취해가는 과정이라고 봐야겠죠. 

– 그러니까 사고력은 끊임없이 목표를 세우고 성취하는 과정에 필요한 것이지 행복과 기쁨의 삶에 필요한 것이 아니죠? 행복과 기쁨은 목표를 성취해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이고요. 

◆ 이제 조금 정리가 되는 것 같아요. 삶의 기쁨과 행복은 살아가면서 목표가 이루어 졌을 때 느끼는 잠시의 감정일 뿐 삶 자체가 될 수 없고 사고력은 삶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성취하는 과정에 사용되는 도구이니까 행복한 삶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이군요. 

– 예. 그리고 미래는 정해지지 않았어요.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행복과 기쁨으로 가득 찬 삶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내일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질 것인지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요? 

◆ 어떻게 보면 기쁨과 행복의 감정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을 애써 지워보려는 사람들의 노력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삶은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고통의 연속일 수밖에 없나요? 무엇인가를 성취했을 때 오는 행복의 감정은 잠시일 뿐 다시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야 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