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필 박사와의 일문일답] – 중도는 행복과 기쁨의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 중도라는 개념이 사고의 과정에서 판단을 내리기 전까지의 과정 또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누구나 판단을 내리잖아요. 판단이 없는 삶이라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 그것이 판단이라는 개념을 많은 사람들이 중도라는 개념처럼 혼동하기 때문이에요. 음식을 먹거나 옷을 입을 때와 같이 매 순간 판단을 하는 데, 판단이 없는 전 단계까지의 사고과정을 중도라고 하니까 판단은 없는 상태에서 사고의 과정만을 이어가는 것으로 생각하거든요. 

◆ 맞아요. 바로 그 부분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죠. 판단이 없는 삶이 과연 가능할 수는 있는 지의 여부요. 

– 명확하지 않은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판단’이라는 단어를 결정을 내리는 것과 동일시하기 때문이에요. 판단이라는 개념에는 기준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요. 

◆ 단순한 결정과는 다르게 판단에는 어떤 기준이 포함되었다는 뜻인 것 같은데 무슨 말인가요? 

– 판단이라는 개념에는 결정이 내려지기까지의 과정이 포함되어 있어요.

◆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아요. 

– 이렇게 설명을 해 볼게요. 먼저 내가 먹고 입고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한 판단의 주체는 누구일까요? 

◆ 바로 나 자신이죠. 

– 그러면 나의 배우자 또는 자녀들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주체는 누구일까요? 

◆ 배우자 또는 자녀들이어야 하겠죠. 그래야 자신의 삶을 자신이 살아가는 것이잖아요. 

– 그런데 현실에서 자신의 삶을 자신이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몇이나 보셨나요? 

◆ 무슨 뜻인가요? 모두가 자신의 삶을 자신이 살아가는 것 아닌가요? 

– 그러면 이렇게 질문해 볼게요.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음식에 관해 박식한 미식가로 알려진 사람이 나와서 한 식당의 음식을 먹고 맛집으로 인정해 줬어요. 그러고 나서 사람들이 그 식당에서 한 끼 음식을 먹고자 줄을 서요. 그러면 이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으로 식당을 찾은 것일까요 아니면 맛집을 인정해 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줄을 선 것일까요? 

◆ 두 가지 다 아닐까요? 맛이 있다는 것을 미식가가 인정해 주었으니 내 의지로 음식을 맛보겠다고 줄을 선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그렇죠. 당사자가 줄을 설 것을 결정했죠. 그런데 여기서 줄을 설 이유를 제공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 맛을 평가한 미식가라고 볼 수 있죠. 

– 바로 그 부분이 판단과 결정의 차이에요. 그리고 이 차이가 내가 내 삶의 주체가 되어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타인에게 끌려가는 삶을 살고 있는지의 여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볼 수 있고요. 

◆ 어느 부분이요. 이유를 제공한다는 부분이요? 

– 예. 특정 식당에 줄은 선 이유가 내가 찾은 이유가 아니잖아요. 난 그저 맛이 있다니까 식당을 가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죠. 

◆ 그러니까 판단이란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까지 포함된 것이고 판단의 주체가 진정 자신인지는 내가 하는 행위의 이유가 어디서 왔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뜻이군요. 

– 예. 맞아요. 사람들은 자신이 판단을 내린다고 생각을 하지만 많은 경우 주변에서 주어지는 이유를 바탕으로 결정만 내리면서 자신이 판단을 했다고 착각을 하죠. 

◆ 예를 들면 어떤 경우가 있을까요? 

– 임금에게 진상하던 음식이라니까 먹어보고 싶고, 미국 대통령과의 만찬에 사용된 재료라고 하니 그 재료를 구하겠다고 서로들 앞 다퉈 돌아다니고, 연예인이 선전을 하니까 그 제품을 구매하고 싶어 하는 등의 행위가 모두 포함된다고 봐야죠. 

◆ 그러면 미식가나 여행가가 죽기 전에 맛봐야 할 음식 또는 가 봐야 할 곳이라고 하니까 줄을 서고 여행을 하는 행위들 모두 유명인이라는 사람들이 제공한 이유를 바탕으로 단순히 따르는 모습이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으로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는 뜻인가요? 자녀들이 부모가 공부하라니까 공부를 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할 수 있고요? 어떻게 보면 소들의 우두머리가 움직이니까 나머지 소들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따라가는 모습이 연상되는데 이것이 진정 인간의 현 모습이라고요? 

– 아주 적절한 예를 들으셨네요. 우두머리를 따라 생각 없이 움직이는 동물들의 모습과 타인이 제공한 이유를 바탕으로 소유하고 싶어 하는 모든 행위가 동물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요. 이것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의 이유이기도 하고요. 

◆ 비록 타인이 이유를 제공하기는 했어도 맛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원하던 곳에 여행을 가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것 아닌가요? 왜 이러한 행위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의 이유가 되나요? 

– 이렇게 생각해 볼게요. 자녀가 공부를 싫어하는 데 공부하라고 하면 즐거울 수 있을까요? 직장일이 힘들고 지치지만 남들이 좋은 직장 다니면서 무슨 불평이냐는 이야기를 듣고 직장을 다니면 힘이 날 수 있을까요? 내 주머니에 돈이 있어 심지어 비행기를 타고 먼 곳을 날아가 소문난 맛집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면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겠지만 그 행복 또한 나 스스로 이유와 근거를 바탕으로 내린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닌데 이런 상황에서 잠시 주어진 행복이 얼마나 지속될까요? 

◆ 그 말씀은 자신의 판단에 기반을 두지 않은 모든 것은 얻어도 잠시만 기쁘고 행복할 뿐 그 행복과 기쁨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뜻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스스로 이유를 찾아 판단하고 행동에 옮기면 행복하고 기쁜 삶을 살 수 있는 것인가요? 그래서 중도를 바탕으로 사고력을 기르는 것인가요?

–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중도와 사고력을 바탕으로 한 삶은 오히려 기쁨과 행복의 반대쪽에 가까워요. 

◆ 예? 지금까지 민 박사님이 설명하신 중도라는 사고의 과정도, 두뇌를 사용하는 사고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모두 삶의 행복과 기쁨을 누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