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필 박사와의 일문일답] –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이루어 나가는 두뇌능력을 소유한 지도자

◆ 지금까지의 민 박사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생각해보니 일반적인 목표 지향적 두뇌능력은 모두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받았을 때 시작되는 것 같아요. 무엇인가 원하는 것이 있는 경우 또는 당면한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생각을 시작하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러한 두뇌능력을 사용한다는 것도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만일 이러한 두뇌능력이 가능했다면 현재 코로나로 인해 모이지 못해 힘들고 우울해 하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았어야 할 것 같은데 정부가 내놓는 수많은 방법들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이 현실이잖아요. 그만큼 힘들다고 보이는데 이 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두뇌능력이 외부의 자극 없이도 사고를 시작하는 두뇌능력이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그 예로 공자, 맹자, 노자 등 성인이라고 하셨고요.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 해 주실 수 있나요? 

– 그러죠. 혹시 노자의 도덕경을 읽어보신 적 있으세요? 

◆ 아니요. 민 박사님은 읽어보셨나요? 

– 아니요. 저도 읽어보지 않았어요. 하지만 대신 ‘노자를 웃긴 남자’라는 책을 읽었죠. 

◆ 어떤 책이었나요? 

– 도올 김용옥이라는 사람은 들어보셨죠? 

◆ 예, 들어봤죠. TV에서도 몇 번 봤고요. 그 사람이 쓴 책이었나요? 

– 아니요. 그 사람의 강의를 듣고 내용이 너무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도덕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내용의 책이었어요. 

◆ 도올 김용옥이라면 인정받는 학자인데 그 사람의 해석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내용의 책이라고요? 

– 예.

◆ 그게 사실이라면 도올 김용옥은 학자라고 볼 수 없겠네요?

– 사실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학자는 연구를 하는 사람들을 뜻하잖아요? 연구라는 것은 같은 내용도 다른 각도에서 보고 또 해석을 하는 방법도 바꿔가며 고서들의 내용을 분석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죠. 

◆ 그 말은 도옥 김용옥의 경우에는 주어진 문장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 것에 매달린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각도에서 자신이 분석을 했다는 뜻인가요? 

– 저는 그렇게 봐요. 반대로 ‘노자를 웃긴 남자’를 쓴 작가는 내용을 있는 그대로 한국어로 번역했다고 볼 수 있고요. 

◆ 그러면 어느 것이 더 믿을 수 있는 내용인가요? 

– 글쎄요. 예를 들어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는 경로에 대한 의견이 분분해 온 것처럼 학자들은 각각 다른 관점에서 관찰하고 실험한 내용을 근거로 자신들의 이론을 이야기 하지만 모든 것을 한 번에 다 설명하지는 못하죠. 이렇듯 도올 김용옥과 같은 학자들이 해석한 내용이라고 해서 모두 신뢰할 수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처음 퍼지기 시작했을 때 나왔던 ‘코로나 바이러스는 큰 비말에 의해 퍼진다!’라는 이론을 철석같이 믿고 모든 상황을 거기에 맞춰 해석을 한다면 그것도 신뢰할 수 없겠죠. 

◆ 그렇다면 결국 학자로서 다른 견해를 바탕으로 분석한 것도 또 해석에 충실해서 해석한 내용도 둘 다 신뢰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뜻인가요? 

– 그렇게 봐야겠죠. 하지만 사고력을 키우는 공부를 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도올 김용옥의 도덕경에 대한 해석이 아닌 그 사람의 접근법을 배우는 것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죠. 

◆ 그렇군요. 그런데 왜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내신 건가요? 질문과는 동떨어진 내용 같은데요. 

– 이제 연결해 볼게요. 도올 김용옥이 도덕경을 강의하고 ‘노자를 웃긴 사람’을 쓴 작가가 그것을 비판하는 등의 행위는 도덕경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죠? 

◆ 그렇죠. 도덕경이 없었으면 도올의 강의도 책도 없었을 테니까요. 혹시 목표 지향적 두뇌능력 중 외부의 자극을 통해 두뇌가 움직이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예를 든 건가요? 

– 맞아요. 그러면 이제 원작자인 노자의 경우를 생각해 볼게요. 도덕경을 쓸 때 노자는 어떤 외부자극을 받았었을 까요? 

◆ 글쎄요?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아닐까요? 

– 그렇죠?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생각을 시작했겠죠? 

◆ 예. 그것도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아닐까요? 

– 외부로부터의 자극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 관찰을 하는 사람의 두뇌능력에 따라 생각을 시작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에 꼭 그렇지는 않아요.

◆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걸요. 

– 이렇게 생각해 볼게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누구든지 관찰을 할 수 있는 것이고 또 관찰을 해 온 것들이니 노자만이 특별히 다르게 본 것이 있다고 할 수는 없죠? 지금 질문자도 살아오면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관찰해 오지 않았나요? 

◆ 예, 보고 듣고 느끼고 살았죠.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조금 알 것 같네요. 누구든 보고 듣고 느끼며 살아가지만 그러한 것들을 가지고 생각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는 뜻이로군요. 예전 스티브 잡스의 경우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과거 컴퓨터가 흔하지 않던 시절 대학에서 알림판을 손 글씨로 써서 붙였고 또 그것을 읽었지만 필체를 컴퓨터에 접목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사람은 없었다는 것과 같군요.

– 예. 맞아요. 누구든 사람들의 삶을 관찰할 수 있지만 도덕경과 같은 내용을 스스로 생각해내고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은 역사에 몇 되지 않는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노자와 같은 사람들이 역사에 남아 아직도 내려오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 그렇군요. 누구든 보고 듣는 것들이지만 그러한 것을 사고로 이어가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아 보이네요. 역사에서 천재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고요. 그런데 이런 두뇌능력을 성인들의 두뇌능력이라고 본다면 석가모니나 예수도 성인이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가 이러한 두뇌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봐야 하는 것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