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필 박사와의 일문일답] – 인간과 동물의 삶은 다르지 않다? 2

누군가를 모방해서 따라하는 것은 인간뿐 아니라 많은 두뇌를 가진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두뇌의 기능이라고 하셨는데 모범이 되는 사람을 칭찬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고 또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도 결국 앞선 세대가 찾아놓은 지식을 그대로 배우는 것이니 모방을 통해 배우는 것이라고 보이네요. 그렇다면 인간의 사회도 동물들의 사회와 다르지 않다는 뜻인데 앞서 이야기에서처럼 인간의 삶을 다람쥐에 비유해서 인생 별것 없다는 것처럼 이야기 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 또한 동물적 두뇌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인간의 고유함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하셨고요. 여기서 질문은 인간의 고유함은 무엇인가?’예요.

창조적 생각을 할 수 있는 두뇌능력이요. 내가 가진 팔도 사고로 잃어버리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고 심장도 인공심장으로 바꾸면 기존의 내 심장도 내 것이 아니죠. 하지만 두뇌는 달라요.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서 신체적으로 약해요.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도구를 만드는 두뇌능력이죠.

하지만 동물들도 도구를 이용하잖아요. 예전 다큐멘터리에서 보니까 원숭이뿐 아니라 새들도 막대기를 이용해 벌레를 잡아먹거나 물고기가 바위를 이용해 조개를 깨는 것처럼 도구나 주변 환경을 이용하는 것을 봤거든요.

맞아요. 하지만 인간의 두뇌능력은 그보다 한 단계 더 진화했죠. 단순히 주어진 도구를 사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를 들면 식물의 줄기를 끈으로 해서 돌과 막대기를 엮어 돌망치를 만들어냈거든요. 그 이후로 인류의 과학기술은 빠르게 발전했죠.

그렇다면 돌망치와 같은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두뇌가 인간 고유의 두뇌능력인가요? 그러한 두뇌를 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창조적 두뇌능력은 쉽게 얻을 수 없어요. 예전에 언급했었지만 아인슈타인도 자기와 같은 천재적 사고력을 가질 수 있도록 사람들을 가르치지 못했고 또 스티브 잡스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창조적 사고를 체계적으로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저 말고는 아직 없어요.

체계적이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나요?

인간의 두뇌와 동물의 두뇌 사이에는 둘을 잇는 다리가 존재해요. 그 다리를 통해 동물의 두뇌기능을 벗어나 인간의 두뇌능력으로 건너와야 하거든요. 동물들도 가지고는 있지만 활용할 수 있는 개체는 극히 드물고 인간의 경우에는 조금 더 활발하게 사용할 수 있는 두뇌능력이죠.

그게 무엇인가요?

목표 지향적 두뇌기능이요.

목표 지향적 두뇌기능이라면 앞서 이야기 한 현재 교육이 흘러가는 방향이자 학생들이 익혀야 하는 두뇌능력 아닌가요? 조건이 주어졌을 때 그 조건들의 조합을 통해 답을 찾아내는 두뇌능력이요.

맞아요. 가장 간단하게 물리를 예로 들자면 속도 (m/s)와 가속도 (m/s2)가 주어졌을 때 이것을 이용해서 시간을 구한다던가 하는 문제들이죠.

물리를 잘 몰라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전혀 모르겠지만 이러한 공부 방법으로 어떻게 목표 지향적 두뇌능력을 키울 수 있죠?

간단해요. 단위를 조합해서 내가 원하는 것만 남기는 방법을 찾으면 되죠. 위의 속도와 가속도의 단위는 시간만 제곱이 되어 있다는 것 말고는 차이가 없으니까 속도에서 가속도를 나누면 시간만 남아요. 이런 식으로 주어진 조건을 조합해가면서 내가 원하는 값을 찾는 방법을 생각해 내는 것이 목표 지향적 공부라고 할 수 있죠.

정리하자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것이 목표이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방법을 찾는 두뇌훈련을 하는 것이니까 목표 지향적인 공부라고 할 수 있다는 뜻이군요.

. 그리고 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에서도 학생들이 이러한 두뇌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가르치려고 노력하죠. 아직 많은 교사나 교수들이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끔 이러한 교수법을 사용하는 교사나 교수들이 있어요. 특히 상위권 학교에 있을 확률이 높죠.

그 이야기는 목표 지향적 두뇌능력을 가르치는 것도 어렵다는 뜻인가요?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조금 전 상위권 학교에는 이렇게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교수법이라는 것을 직접 가르치는 것으로 받아들이셨나보군요. 직접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 자신이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과제를 내 주어 학생들로 하여금 비슷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만드는 방법이죠. 학교 또한 커리큘럼을 짜서 학생들에게 목표 지향적 두뇌를 발달시킬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에 그치고요.

학생들에게 풀어야 할 문제만 잔뜩 내어주고 결과만 확인하는 것 말고는 결국 창조적 사고력도 목표 지향적 두뇌능력도 직접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는 뜻이군요. 학생들의 삶이 힘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앞서 목표 지향적 두뇌능력이 동물들의 두뇌에서 인간의 두뇌로 넘어갈 수 있도록 이어주는 다리라고 하셨잖아요? 왜 그런가요?

바둑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볼게요. 바둑에서 사용하는 수를 많이 배우고 익힌 사람들이 자신들이 배운 수만 가지고 바둑을 둘까요?

아니죠. 새로운 수를 찾아내고 시도해보면서 실력을 늘리겠죠.

바로 그 부분이에요. 새로운 수를 만들어 내는 것. 비록 스티브 잡스처럼 새로운 개념의 제품을 만들 수는 없지만 적어도 새로운 기술을 따라잡고 나아가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여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두뇌능력이 목표 지향적 두뇌능력이에요. , 여기서 스티브 잡스의 새로운 제품이라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게임을 뜻하고 새로운 기능 등을 추가하는 것은 바둑에서 새로운 수를 찾아내는 것에 비유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목표 지향적 두뇌능력은 기존의 지식이나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낼 수 있는 두뇌능력이기 때문에 창조적 사고력으로 가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군요. 그렇다면 학교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이 창조적 두뇌능력을 발휘할 확률이 높겠네요. 목표 지향적 두뇌능력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꼭 그렇다고 할 수 없어요. 개중에는 목표 지향적 두뇌능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높은 성적을 받는 학생들도 있으니까요. 존재하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외우면 가능하거든요. 바둑을 다시 예로 들자면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수를 다 외워서 이기는 경우죠. 그리고 제가 본 현실은 외워서 높은 성적을 받는 학생들이 훨씬 더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