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필 박사와의 일문일답] – 인간과 동물의 삶은 다르지 않다? 1

앞서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창조적 사고력을 바탕으로 개발한 것이 기술과 같이 결과물로 나타나는 경우 다른 사람들이 쉽게 따라잡을 수 있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같은 개념은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따라잡기 어렵다는 뜻인데 맞나요?

– 맞아요. 무엇이든 결과가 눈에 보이면 사람들은 쉽게 따라할 수 있지만 보이지 않으면 따라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관심을 두는 사람도 많지 않죠.

하지만 상대성이론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잖아요. 그리고 그 이론을 적용해서 원자폭탄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 사람들이 접하는 결과물은 상대성이론의 한 부분일 뿐 상대성이론 자체라고 볼 수 없어요. 그리고 아직 상대성이론에서 증명되어야 할 부분도 많이 남아있고요. 그런데 조금 전 상대성이론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했죠?

예. 다들 알고 있으니까요.

– 그러면 상대성이론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요?

아니요. 제가 물리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또 전공했다 하더라도 상당히 복잡할 것 같은데요.

– 그렇다면 상대성이론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닌 것 같기는 한데…….

– 그렇죠? 세상 사람들은 지금 질문자처럼 이름이라는 껍질만 알고 있으면서 마치 자신이 그 내용까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해요. 심지어는 이름이나 알려진 간단한 것을 가지고 그 이론이 맞고 틀림을 논하죠.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네요. 이론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론 자체가 맞는지 틀린지를 논할 수는 없겠네요. 원자폭탄이 윤리적인지의 여부는 논할 수 있겠지만요.

– 바로 그 부분이 제가 하려던 이야기예요.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컴퓨터에 필체를 합쳐 애플이라는 컴퓨터를 만들어져 세상에 나오면 그 컴퓨터의 용도가 나에게 적합한지 아닌지를 이야기 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러한 결과가 없으면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죠.

조금 개념이 복잡해지는 것 같은데 다시 정리하자면 컴퓨터나 스마트폰 같은 결과물이 있으면 사람들은 그 제품의 용도나 품질에 대해 이렇다/저렇다를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상대성이론과 같은 개념은 그 개념의 맞고 틀림을 논할 수 없다는 뜻인 것 같은데 그런가요?

– 예. 맞아요. 그래서 학자들의 경우 맞다/틀리다를 이야기하기 보다는 하나의 이론을 어떻게 해석하고 조건이 바뀌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찾아가죠.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자면 다윈의 진화론이 있어요. 아직도 진화론의 진위여부를 사람들은 논하고 있죠? 아마 다윈이 어떤 근거와 논리를 가지고 진화론을 이야기했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걸요.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진화론에 대해 아는 것은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내용이지 자세하게 어떤 논리로 다윈이 그렇게 주장했는지는 모르거든요. 생각해보면 생각이라는 것도 결과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어야 그것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여행을 다녀와야 여행에서 겪었던 경험을 이야기 할 수 있잖아요. 왜 그럴까요?

– 그 답은 간단하게 찾을 수 있어요. 이렇게 생각해보죠. 애플이 아이폰을 새롭게 만들어 판매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제품에 사람들이 열광했다고 한다면 다음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경쟁이 치열한 이 사회에서요.

다른 회사들도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는 현실을 보면 답은 나와 있는 것 같은데요.

– 너무 뻔한 질문을 했나요? 그러면 다음 질문이요. 다른 회사들은 왜 아이폰과 비슷한 형태의 스마트폰을 만들까요?

이 질문도 너무 투명하게 답이 보이는데요. 회사가 살아남으려면 시장성이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하고 아이폰이 잘 팔리는 것을 보면 당연히 그와 비슷한 제품을 만들게 되는 것 아니겠어요.

– 그렇죠. 이제 답을 찾으셨나요? 왜 사람들은 결과물이 있어야 생각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요?

제 답에 답이 있다고요? 모르겠는데요?

– 사람들이 낚시로 고기를 하나씩 잡을 때 누군가 옆에서 그물을 던져 한 번에 왕창 잡으면 그것을 본 사람들은 그물을 만드는 방법을 찾게 되죠. 이렇게 인간의 두뇌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방법을 접하면 바로 따라할 수 있는 방향으로 두뇌가 진화했어요. 이러한 두뇌는 인간뿐 아니라 동물들도 가지고 있어요. 곰들이 연어 사냥을 하는 것을 지켜보던 늑대가 같은 방법으로 연어를 잡거나 인간의 톱질을 보고 조금은 서툴지만 톱질을 하는 오랑우탄의 모습이 바로 인간을 포함한 두뇌를 가진 많은 동물들의 보고 따라하는 두뇌기능을 보여주죠.

잠깐만요. 다시 정리하고 넘어갈게요. 새로운 제품이던 새로운 개념이던 그것이 결과물로 나타났을 때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두뇌기능을 인간이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기능은 인간뿐 아니라 많은 동물들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인간이 다른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인가요?  

– 돌도끼를 만들면 돌도끼를 따라서 만들고 낚싯바늘을 개발하면 누군가 그것과 비슷한 바늘을 또 만들고 스마트폰을 개발하면 다른 회사들도 비슷한 제품을 만들죠. 이렇게 인간의 두뇌는 다른 두뇌를 가진 동물들보다 조금 더 빠르게 새로운 것을 습득해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뿐 다른 차이는 없어요.

물론 사람들을 치유한다는 사회 지도자들 중 한 사람이 인간의 삶을 다람쥐에 비유하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저는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민 박사님도 인간이 동물들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시는 것인가요?

– 그러한 현상은 말 그대로 그 사람의 두뇌가 동물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에요. 자신의 두뇌능력으로 볼 수 있는 한계가 거기까지인데 어떻게 그 이상을 생각할 수 있겠어요. 만일 인간의 삶이 다른 동물들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그냥 사는 거지 뭐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사회의 지도자 위치에 있고 그 사람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러한 지도자를 따르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개나 원숭이에게 배우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그러면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들과 차별된 인간만의 고유함이 존재한다는 뜻인가요?